선시(禪詩)

嘲達摩西來 조달마서래 / 淸虛休靜(청허휴정)

경성 성진 (鏡惺 聖眞) 2022. 12. 15. 07:56

 

 

嘲達摩西來 조달마서래 
/ 淸虛休靜(청허휴정)

身毒風塵曾不起 신독풍진증불기    
誰將紅粉敢塗腮 수장홍분감도시     
䨥眉本自雙眉秀 쌍미본자쌍미수     
兩眼依前兩眼開 양인의전양안개      
葱嶺白雲藏不得 총령백운장부득  
悔敎胡老出西來 회교호노출서래   

°달마가 서쪽에서 왔다가 (돌아간 일을) 비웃다
신독(인도)에선 어지러운 일이 이전에 일어나지도 않았었는데
누군들 장차 구태어 볼에 홍분을 바르고 (귀국하려) 하였겠는가?
두 눈썹은 원래 절로 수려한 두 눈썹이고
두 눈은 여전히 뜨고 있는 두 눈이라
총령의 흰 구름도 감출 수가 없었나니
후회하여 태어난 서쪽에서 왔다가 (돌아가는) 호노(달마)여!

* 解譯(해역) : 鏡惺 聖眞 (경성 성진)


■ 身毒 신독 
고대 중국인이 인도 지방을 부른 명칭.
산스크리트로 내[川]를 의미하는 신두에 기원한다고 한다. 
문헌으로서 가장 오랜 것은 《사기(史記)》 〈대완열전〉에 
'대하(大夏)의 동남에 신독국(身毒國)이 있다'는 기록이다. 
중국 전한(前漢) 무제 때 장건(張騫)의 서역원정으로 
이 명칭이 생긴 것 같다. 
위진시대부터 당(唐)나라 때에는 천축(天竺)이라 하였고, 
그 이후에는 인도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도 신라 때 혜초가 인도를 순력하고 돌아와 
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썼다.
※출처 :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風塵 풍진 
1. 바람과 티끌. 
2. 세상(世上)에 일어나는 어지러운 일

°어떤 어지러운 일?
선종(禪宗)을 알리다 여러번 당한 독살의 위험 등

● 曾 일찍 증
1. 일찍
2. 이전에

°어떤 이전?
달마대사가 중국에 오기 (西來하기) 이전에

■ 誰將 수장
누가 장차 --하려 하다.

■ 紅粉 홍분
연지와 분

°왜 연지와 분을 바르나?
치장을 하여 본인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 葱嶺 총령 
파미르(Pamir) 고원 지역을 두루 일컬음.

¤葱嶺白雲藏不得 총령백운장부득 
총령의 흰 구름도 감출 수가 없었으니

°무엇을 감출 수가 없었나?
달마가 태어난 서쪽으로 돌아가는 일

°어떻게?
위나라 사신이었던 송운(宋雲)을 만나서

■ 胡老 호노
오랑케 노인
이 게송에서는 서역인인 달마(達摩)대사

■ 달마(達摩)  [범] Bodhidharma (? – 536)
남인도의 향지왕(香至王)의 세째 아들로서 출가하여 
반야다라 존자(般若多羅尊者)의 법을 받고
본국에서 오래 교화하다가 
양(梁)나라 무제(武帝) 대통(大通) 1년(527)에 
배로 광동성 광주(廣州)에 닿았다.
이후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의 석굴에서 
구년 동안 면벽(面壁)하다가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하였다.
위(魏)나라 효명제(孝明帝)가 세 번이나 모시려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 예물만은 부득이 받았다.
그러나 광통율사(光統律師) 같은 이들은 그를 시기하여 
다섯 번이나 음식에 독약을 넣었지마는 
번번이 토하여 무사하였는데, 
여섯 번째는 그대로 두어 그 중독으로 인하여 입적하자 
웅이산(熊耳山)에 매장하고
그 밑 정림사(定林寺)에 탑을 세웠다..
달마가 열반에 든 뒤ㆍ그후 1년설 3년설이 있음
위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오다가, 
총령(葱嶺)에서 달마대사가 맨발 벗고, 
신 한 짝을 들고 가는 것을 만나 보고 와서 
그 묘를 파보니, 신 한 짝만 남았더라고 하는 
이야기가 전하여 오고 있다。


달마가 중국에 와서
선종을 알리는 일은
교종(敎宗) 위주의 기존 질서에 대한
일종의 혁명이었다.

깨달음을 얻어 개안(開眼)한 선지자(先知者)들은
그리 자주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당 시대에는 이런 분들이 거의 없기에
기존 세력에 유지되어 오고 있는 사람들에겐
자기들 안목으론 잘 유지되온 선(善)의 기존 질서를
개안(開眼)한 선지자(先知者)들이 그 문제점을 포착하여
무너트리기 때문에 그들에겐 악(惡)의 화신으로 이해되어
당시 주류세력과 일반 민중에 의해
배척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의 일이다.

특히 기존 질서가 완전히 확고하게 자리잡으면
그 폐해가 더 심각한 바
소크라테스, 예수가 그 사신던 곳의 민중재판 비슷한 곳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가신 일은 이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근세의 경허 선사님께서도 또한
그 당시 눈을 뜨지도 못한채 주류를 이루었던
허주(虛舟)와 그 일파에 의하여
미친놈이라는 핍박을 받으시다 가신 일도
이런 예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어 개안(開眼)한 선지자(先知者)들은
헉명가(革命家)이기 때문에
그들이 생존(生存)했을 때는
그에 상응한 대우를 받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달마대사께서
하실 일을 마치시고서 귀국하신 일은
어떤 의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