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德大王神鍾之銘(성덕대왕신종지명)
朝散大夫(조산대부) 前太子(전태자) 通議郞(통의랑) 翰林郞(한림랑)
金弼衆(김필중)이 왕명을 받들어 짓다.
무릇 궁극적인 묘한 도리는 형상의 밖에까지 포함하므로,
아무리 그 모습을 보려고 하여도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없으며,
큰소리(大音)는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곳에 진동하고 있지만
이를 아무리 듣고자하여도 도저히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런 연유로 임시로 방편가설(方便假說)을 열어
삼진(三眞)의 깊은 자리를 보이게 하고,
신종을 높이 매달아
일승(一乘)의 원음(圓音)을 깨닫게 한다.
대저 종이라고 하는 것은,
불토인 인도를 돌아보면 카니시카왕이 종을 만든 경험이 있고,
황제의 고향인 중국에서 찿아보면 고연(鼓延)이 처음 쇠북을 지었다.
속은 텅 비었으나 능히 그 울림이 끝이 없으며,
무거워서 그 몸체를 움직이기 어려워 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임금의 으뜸가는 공훈(功勳)을 표면에 새기니
중생들의 이고득락(離苦得樂) 또한 이 종소리에 달려 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성덕대왕의 덕(德)은 산과 바다처럼 높고 깊으며
그 이름은 해와 달처럼 높이 빛났다.
왕께서는 항상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을 발탁하여
백성들을 편안히 살 수 있게 하였고,
예(禮)와 악(樂)을 숭상하여 미풍양속을 권장하였다.
들에서는 농부들이 천하의 대본(大本)인 농사에 힘썼으며,
시장에서 사고파는 물건에는 사치한 것은 전혀 없었다.
풍속과 민심은 금옥(金玉)을 중시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는 문학과 재주를 숭상하였다.
태자로 책봉하였던 아들 중경(重慶)이
715년 뜻밖에 죽어 영가(靈駕)가 되었으므로
늙음에 대하여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
40여년간 왕위에 있는 동안 한 번도 병란(兵亂)으로
백성들을 놀라게 하거나 시끄럽게 한 적이 없는 태평성세였다.
그러므로 사방 이웃 나라들이
만리(萬里)의 이국(異國)으로부터 와서 주인으로 섬겼으며
오직 흠모하는 마음만 있을 뿐,
일찍이 화살을 겨누고 넘보는 자가 없었다.
어찌 연(燕)나라의 소왕(昭王)과 진(秦)나라의 목공(穆公)이
어진 선비를 등용하여 서융(西戎)을 제패히고,
제(齊)나라와 진(晋)나라가 무도(武道)로써 천하를 서로 탈취한 것과
나란히 비교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성덕대왕의 붕거(崩去)를 예측할 수 없었으며,
세월이 무상하여 천년이라는 세월도 어느덧 지나가는 지라
돌아가신지도 벌써 3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근래에 효자이신 경덕대왕이 살아계실 때 왕업을 이어받아
모든 국정을 감독하고 백성을 어루만졌다.
일찍이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해마다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얼마되지 않아 이어 부왕인 성덕대왕이 승하하였으므로
궐전(闕殿)에 임할 때마다 슬픔이 더하여 추모의 정이 더욱 처량하고,
명복을 빌고자하는 생각은 다시 간절하였다.
그리하여 구리 12만근을 희사하여 대종 일구(一口)를 주조코자 하였으나,
마침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문득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임금이신 혜공대왕께서는 행(行)은 조종에 명합하고,
뜻은 불교의 지극한 진리에 부합하였으며,
수승(殊勝)한 상서는 천고(千古)에 특이하며,
아름다운 덕망은 당시에 으뜸이었다.
경주의 육가(六街)에서는
용이 상서로운 비와 구름을 옥계(玉階)에 뿌리고 덮으며,
구천의 북소리는 금궐(金闕)에 진동하였다.
쌀알이 꽉꽉 찬 벼 이삭이 전국의 들판에 주렁주렁 드리웠고,
경사스러운 구름은 경사의 하늘을 훤하게 밝혔으니,
이는 혜공왕의 생일을 경하한 것이며,
또한 왕이 8세 때 즉위한 후,
어머니 만월부인(滿月夫人)의 섭정으로부터 벗어나
친정(親政)하게 된 서응(瑞應)인 것이다.
살펴보건대 소덕태후(炤德太后)의 은혜는 땅과 같이 평등하여
백성들을 인으로써 교화하고,
마음은 밝은 달과 같아서 부자의 효성을 권장하였다.
이는 곧 아침에는 외삼촌(元舅)의 현명함이 있고,
저녁에는 충신들의 보필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왕은 신하들이 제언하는 안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없었으니
무슨 일을 결행한들 잘못됨이 있었겠는가?
경덕왕의 유언에 따라 숙원을 이루고자
유사(有司)는 주선(周旋)을 맡고,
종의 기술자는 설계하여 본을 만들었다.
목성이 대연에 온 해 대려 달이니
이 때에 해와 달이 번갈아 빛나고
음과 양의 기운이 조화로우며
바람은 부드럽고 하늘은 고요하였는데
신이한 그릇이 모습을 나타내며 이루어졌다.
마침내 신종이 완성되니
그 모양은 마치 산과 같이 우뚝하고,
소리는 용음(龍吟)과 같았다.
위로 꼭대기 있는 산마루에 사무치고
아래로 바닥없는 바다 속에까지 통한다.
그 모양을 본 사람은 기이하다고 찬미하고
그 소리을 들은 자는 복을 받는다.
원하옵건대,
이 오묘함을 성덕대왕 영전에 올리오니,
크고 너른 부처님 진리를 듣는 맑은 울림을 들으시고,
말없는 진리의 자리에 오르시며,
삼명의 수승한 마음자리에 닿으시고,일승의 참된 경지에 머무소서!
이에 옥으로 된 꽃떨기 숲이 되고,
더불어 금으로 된 나뭇가지 길이 이어지소서!
국운이 무성하고 철로 울타리를 두른 듯
국방이 튼튼하여 더욱 번창 하게 하소서!
유정 무정 일체 중생이 지혜의 바다에 같이 들어가고,
함께 티끌세상을 벗어나게 하며,
더불어 깨달음의 길에 오르게 하소서!
신 필중(弼衆)은 옹졸하며 재주가 없으나
감히 왕명을 받들어
반초(班超)의 붓을 빌리고,
육좌(陸佐)의 말을 따라
그 바람과 뜻을 서술하여 종에 새겨 적습니다.
한림대서생(翰林臺書生) 대마나(大奈麻) 김부환(金符?)이 종명을 쓰다.
찬왈(讚曰)
음양기(陰陽氣)가 서린 공중 천문(天文)걸리고
땅덩어리 굳어져서 방위를 열다.
산하대지(山河垈地) 나열(羅列)되어 만물을 실어
곳곳마다 제자리가 펼쳐졌도다.
해가 뜨는 넓고 푸른 동해바다엔
많은 선인(仙人) 함께 모여 계시옵는 곳
지대(地帶)로는 복숭나무 있는 곳이며
경계(境界)로는 부상(扶桑)과 연접하였네.
덕업일신(德業日新) 강나사방(綱羅四方)
우리나라가 삼국통일 이룩하여 하나가되다.
위대하신 그 성덕(聖德)을 상고해보니
혜공왕에 이르도록 날로 새롭다.
묘하고도 맑으시온 임금의 덕화(德化)
혁거세왕 이후부터 지금에까지
억조창생(億兆蒼生) 그 모두가 은혜를 입되
유정무정(有情無情) 빠짐없이 은총을 받다.
무성하온 왕족들은 갈수록 번창
모든 국민 태평성세 누려왔으니
대공란(大恭亂)도 평정되어 수운(愁雲)도 걷고
지혜광명 밝게 비춰 훨훨 춤추다.
공손하고 효성스런 혜공대왕이
이어받은 그 왕업을 충실히 이행
백성들을 다스림엔 고도(古道)를 지켜
미풍양속 추호라도 어김이 없네!
자나깨나 부왕유훈(父王遺訓) 생각하오며
십이시중(十二時中) 자모은혜(慈母恩惠) 잊지 않아서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 빌고자
대신종을 주조코자 기원하였다.
위대하고 신심 깊은 소덕태후는
현명하고 덕이 높아 비길데 없네!
신비로운 기적서상(奇蹟瑞祥) 자주 나투며
신령스런 부험(符驗)들을 계속 보이다.
군신상하 하늘까지 함께 도와서
백성들은 편안하고 나라는 부강(富强)
지극하신 그 효심은 날로 깊어서
소덕후(昭德后)와 경덕대왕 소원을 성취.
경덕대왕 남긴 유언 깊이 새겨서
온갖 정성 기울여서 신종을 부어
천우신조 인력들이 함께 뭉쳐서
보배로운 종법기(鐘法器)가 이루어졌네!
일체마귀(一切魔鬼) 남김없이 항복을 받고
고통받는 모든 어룡(魚龍) 구제(救濟)하오니
그 종소리 웅장하여 양곡(暘谷)을 진동
맑고맑은 메아리는 삭봉(朔峰)을 넘다.
보는이와 듣는이는 모두가 발심(發心)
선남선녀 빠짐없이 동참하였네!
내면에는 원공(圓空)이요
외체(外體)는 신비
성덕대업(聖德大業) 소상하게 나타냈도다.
위대하신 이 업적은 영원한 홍복(鴻福)
어디서나 어느때나 더욱 빛나리!
한림랑(翰林郞) 급찬(級?) 김필중은 왕명을 받들어 짓고,
대조(待詔)인 대나마(大奈麻) 한단(漢湍)은 쓰다.
검교사(檢校使) : 병부령(兵部令) 겸 전중령(殿中令) 사어부령(司馭府令)
수성부령(修城府令) 감사천왕사부령(監四天王寺府令) 겸
검교진지대왕사사(檢敎眞智大王寺使)
상상(上相) 대각간(大角干)
신(臣) 김옹(金邕)
검교사(檢校使) : 숙정대령(肅政臺令) 겸 수성부령(修城府令) 검교감은사사(檢校感恩寺使)
각간(角干) 신(臣 )김양상(金良相)
부사(副使) : 집사부시랑(執事部侍郞) 아찬(阿?) 김체신(金體信)
판관(判官) : 우사록관사(右司祿館使) 급찬(級?) 김림득(金林得)
판관(判官) : 급찬(級?) 김충봉(金忠封)
판관(判官) : 대나마(大奈麻) 김□□보(金□□甫)
녹사(錄事) : 나마(奈麻) 김일진(金一珍)
녹사(錄事) : 나마(奈麻) 김장□(金張□)
녹사(錄事) : 대사(大舍) 김□□(金□□)
대력(大曆) 육년(六年) 세차(歲次) 신해(辛亥) 12월 14일
주종대박사(鑄鐘大博士) 대나마(大奈麻) 박종일(朴從鎰)
차박사(次博士) 나마(奈麻) 박빈나(朴賓奈)
나마(奈麻) 박한미(朴韓味)
대사(大舍) 박부악(朴負岳)
성덕대왕 신종명 원문
聖德大王神鍾之銘 朝散大夫兼太子朝議郞翰林郞金弼奧奉 敎撰
夫至道包含於形象之外 視之不能見其原 大音震動於天地之間 聽之不能
聞其響 是故憑開假說 觀三眞之奧載 懸擧神鍾 悟一乘之圓音 夫其鍾也 稽
之佛土則 驗在於罽膩 尋之帝鄕則 始制於鼓延 空而能鳴其響不竭 重爲難
轉其體不褰 所以 王者元功克銘其上 群生離苦亦在其中也 伏惟
聖德大王德共山河而並峻 名齊日月而高懸 擧忠良而撫俗 崇禮樂以觀風
野務本農 市無濫物 時嫌金玉 世尙文才 不意子靈有心老誡 四十餘年臨邦
勤政 一無干戈 驚擾百姓 所以 四方隣國 萬里歸賓 唯有欽風之望 未曾飛矢
之窺 燕秦用人 齊晉替覇 豈可並輪雙㘘而言矣 然雙樹之期難測 千秋之夜
易長 晏駕已來于今三十四也 頃者 孝嗣景德大王在世之日 繼守
丕業 監撫庶機早 隔 慈䂓對星霜而起戀重 違 嚴訓臨闕殿以
增悲 追遠之情轉悽 益魂之心更切 敬捨銅一十二萬斤 欲鑄一丈鍾一口 立
志未成 奄爲就世 今 我聖君行合 祖宗意符 至理殊祥 異於千
古 令德冠於常時 六街龍雲蔭灑於玉階 九天雷鼓震響於金闕 菓米之林離
離乎外境 非煙之色煥煥乎京師 此卽報玆誕生之日 應其臨政之時也 仰惟
太后恩若地平 化黔黎於仁敎 心如天鏡 獎父子之孝誠 是知朝於元舅之賢
夕於忠臣之輔 無言不擇 何行有愆 乃頋遺言 遂成宿意 尒其有司辨事 工匠
畫摸 歲次大淵 月惟大呂 是時日月僣暉 陰陽調氣 風和天靜 神器化成 狀如
岳立 聲若龍吟 上徹於有頂之巓 潛通於無底之方 見之者稱奇 聞之者受福
願玆妙回奉翊 尊靈 聽普聞之淸響 登無說之法筵 契三明之勝心 居
一乘之眞境 乃至瓊萼之叢 共金柯以永茂邦家之業 將鐵圍而弥昌 有情無
識慧海同波 咸出塵區 並昇覺路 臣弼奧拙無才 敢奉 聖詔 貸班超之
筆 隨陸佐之言 述其 願旨 銘記于鍾也
翰林臺書生大奈麻金符白宛書
其詞曰
紫極懸象 黃輿啓方 山河鎭列 區宇分張 東海之上 衆仙所藏
地居桃壑 界接扶桑 爰有我國 合爲一鄕 六元聖德 曠代弥新
妙妙淸化 遐邇克臻 將恩被遠 与物霑均 茂矣千葉 安乎萬倫
愁雲忽慘 慧日無春 恭恭孝嗣 繼業施機 治俗仍古 移風豈違
日思嚴訓 常慕慈輝 更以修福 天鍾爲祈 偉哉我后 感德不輕
寶瑞頻出 靈符每生 主賢天祐 時泰國平 追遠惟勤 隨心願成
乃頋遺命 于斯寫鍾 人神獎力 珍器成容 能伏魔鬼 救之魚龍
震威暘谷 淸韻朔峰 聞見俱信 芳緣允種 圓空神軆 方顯聖蹤
永是鴻福 恒恒轉重
翰林郞級湌金弼奧奉 詔撰
待 詔大奈麻姚 湍書
檢校使兵部令兼殿中令司馭府令 副使執事部侍郞阿 湌金體信
修城府令監四天王寺府令幷檢 判官右司祿館使級 湌金菛淂
校眞智大王寺使上相大角干臣 判官級湌金 忠封
金邕 判官大奈麻金 如芿庾
檢校使肅政臺令兼修城府令檢 錄事奈麻金 一 珎
校感恩寺使角干臣金良相 錄事奈麻金 張 幹
錄事大舍金 □ □
大曆六年歲次辛亥 十二月十四日 鑄鐘大博士大奈麻朴從(?)鎰(?)
次博士奈麻 朴賓奈
奈麻朴韓味大舍朴負岳
* 해인풍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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