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이야기

경허 수월선사님께서는 말년에 왜 북방행을 하셨나?

경성 성진 (鏡惺 聖眞) 2020. 8. 30. 17:39

 

경허(鏡虛)선사님과 수월(水月)선사님의
말년행장(末年行將)으로 보이는
만주시대(滿洲時代)의 도래(到來)!


경허 선사께서는 말년(1905년 57세)에
세상을 피하고 이름을 숨기시고
갑산(甲山)ㆍ강계(江界) 등지에 자취를 감추시고,
스스로 호를 난주(蘭州)라 하시어,
머리를 기르시고 유관(儒冠)을 쓰시고,
바라문의 몸을 나타내시어
만행(萬行)의 길을 닦으시어
진흙에 뛰어드시고 물에 뛰어드시면서
인연따라 교화하셨고

수월 선사께서도 1910년경 강계군에 있는 자북사(子北寺)에
머무시며 스승의 행방을 애타게 찾아다니신 이후
경허선사님을 뵌 후 2년간 먼발치서 지켜보시다가
경허선사님께서 열반하시자 장례를 치르신 뒤
그 사실을 당시 수덕사 정혜선원에서 정진하시던
만공선사님께 통보하신 뒤 58세인 1912년부터
두만강을 넘어 간도(間島)로 거처를 옮기신 뒤
백두산 기슭에 있는 도문시 회막동에서
3년 동안 소먹이 일꾼으로 일하셨습니다.
1915년 회막동을 떠나 만주와 러시아 국경지대에 있는
흑룡강성의 수분하(綏芬河)로 들어가셨습니다.
그곳 관음사(觀音寺)라는 작은 절에서 신분을 감추신채
6년간 보임을 하셨습니다.
그러시다가 1921년 봄 왕청현 나자구(羅在溝)에 들어가시어
화엄사(華嚴寺)라는 작은 절에서 머무르고 계시다가
1928년 늦여름 화엄사가 자리한
송림산의 개울가에서 결가부좌를 한 채 입적하셨습니다.
바지저고리와 짚신 한 켤레를 머리 위에 얹으신 채였습니다.


만주가 세계의 새로운 곡창으로서 대두된 지금
경허 수월 이분들의 북방행이
단지 우연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만주를 중심축으로하는
신세계질서의 역사 도래가
눈앞에 바로 도래한 (늦어도 2020년대 중후반) 현재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분들의 말년 북방행이 의미하는 바가
결코 작지않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2차세계대전시 그 지배층인
우리 동이족의 일족인 부여족(夫餘族)이 거주하던
그들의 고토(古土)인 만주를 차지하고
만주국을 세웠던 역사를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필자가 여러 사료와 자료들을 분석해보니
일본의 근현대화에는
일제 부여족은 우리 동이족의 일족인
발해유민 케레이족과
그 일파내지 혼족인 카자르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우리 동이족의 일파인 그들이 거주하던
또는 그들이 거주하기를 간절하게 원하던
만주를 일제가 차지하면 줄것처럼 하고
여러 지원을 많이 받고 목적달성을 한 뒤에
일제 부여족 혼자 먹뛰를 하였다 깨진 역사가
현재까지의 역사로 보입니다.

만주가 세계의 신곡창지대로 대두된 지금은
우리 동이족의 일족인 발해유민 케레이족과
그 일파내지 혼족인 카자르족이
만주를 2차세계대전 그때보다도 더욱 더
절실히 원하고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우리 동족의 일파인 이들이 만주를 원하여
그들의 고토(古土)내지 원하는 땅에 들어와
우리와 어울리며 살겠다고 원하면
(코리아연방국가로 편입)

세계일화(世界一花)라!
우리 동족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만주에 적응하도록 적극 협력하여 도와야
이 시대적 격변기에
민초의 피해도 적을 것이고
국가적 재도약의 발판도 혹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경허 수월선사님께서는 말년에 왜 북방행을 하셨나?
만주시대(滿洲時代)가 도래(到來)한 지금
몽중(夢中)에서
괴국(槐國)의 역사에 대하여
잠꼬대 한번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