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스님은 어찌하여?
한암은 평안남도 孟山 牛頭庵에서 오도 후에
경허화상이 없어 자신의 경계를 인증(印證) 받을 데가 없다고
크게 탄식하였다.
한암은 경허선사께서 삼수갑산으로 떠나기 전
데려가고 싶어하였던 마지막 제자였다.
그러나 어떤 사유인지 알 수 없지만 한암스님은
동행을 원하는 스승의 청을 냉정하게 거절하셨다.
이 때가 경허가 북방으로 떠나기 한 해 전이었고
이후로 한암은 다시는 경허를 만나지 못했다.
그 후 한암은 평안남도 孟山 牛頭庵에서 오도 후에
경허화상이 없어 자신의 경계를 印證 받을 데가 없다고
크게 탄식하였다.15)
● 이 당시 한암스님은 왜 자신의 경계를 印證 받을 데가 없다고
크게 탄식하셨나?
경허선사에게 마지막으로 대체 어떤 말씀을 들으셨을까?
이 당시 경허선사님은 계시지 않았어도
경허의 제자였던 경허의 세달이라 불리웠던
수월(水月)과 혜월(慧月), 그리고 만공(滿空) 등이
생존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암스님은 왜 자신의 경계를 인증(印證) 받을 데가 없다고
크게 탄식하셨나?
경허선사님의 偶吟 (우음) *火裏蝍蟉卽不問 화리즉료즉불문
게송을 정독해 보시라.
그리고 본 블로그글
*鏡虛(경허)선사님 제자(弟子)분들 인가(印可) 문제 고찰
*경허(鏡虛)선사님께서는 어찌하여
를 참조해 보사라.
15) “秋來孟山牛頭庵, 過寒際. 而翌年春(1912년),
同居闍梨, 包粮次出去, 余獨在廚中着火, 忽然發悟,
與修道開悟時, 少無 差異, 而一條活路, 觸處分明.
鳴呼! 喁吟聯句, 時當末葉, 佛法衰廢之甚,
難得明師印證. 而和尙長髮服儒, 來往於甲山 江界等地,
是歲入寂, 餘恨可旣.”
(한암, 「一生敗闕」, 『漢巖一鉢錄』 下卷 附錄,
오대산 월정사, 1995, 44~45쪽.):
*윗글 출처 : 『鏡虛集』 편찬, 간행의 경위와 변모 양상
이상하(Yi Sang-ha)
東洋學 第50輯(2011年 8月) 檀國大學校 東洋學硏究所
1 - 19 (19 pages) KCI등재
한암스님은 후일 경허선사에 대하여
"非鴻鵠, 難知鴻鵠之志"
"學和尙之行履則不可 人信而不解也"
"홍곡이 아니면 홍곡의 뜻을 알기 어렵다"
"학인이 화상의 행을 본받아 행하는 것은 불가하다.
사람들이 믿을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신 바 있고
"和尙詩有,
(경허)화상의 (다음) 구절의 시가 있는데
"酒或放光色復然,
貪瞋煩惱送驢年.
佛與衆生吾不識,
平生宜作醉狂僧"之句.
寫出其一生行履也.
그 분 일생(동안) 어떤 일을 행하셨나 그대로 베껴낸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신 바 있는데
경허선사님 일생(동안) 어떤 일을 행하셨나하는
바로 윗 내용의 시구(詩句)는
해역자가 바로 이전 2항에 걸쳐서 서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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