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법시대(末法時代)의 전등(傳燈)
- 동학사 사하촌 이처사
1879년 경허 스님이 동학사에서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 나귀의 일도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한지 석 달이 지났다.
동짓달 보름께였다. 그때 원규(元奎)라는 사미승이 스님의 시봉을 들고 있었다.
어느 날, 만화 스님의 제자이자 경허 스님의 사형인
학명(學明) 스님이 원규의 부친인 이 처사를 찾아갔다.
찾아간 학명 스님을 보고 이 처사가 물었다.
원규(元奎)라는 사미승의 부친인 이 처사는
개오처(開悟處)가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여 이처사라고 부르던 분이었다.
“요새 동욱(경허) 대사는 뭘 하나?”
“그저 방안에서 소처럼 앉아 있습니다.”
“중노릇 잘못하면 소가 되는 이치를 아는가?”
“그거야 공부를 하지 않고 공양만 받아 먹으면 소밖에 될 게 있습니까?”
“중노릇을 그만큼 하고 겨우 대답을 그렇게 밖에 못한단 말인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선리(禪理)는 모릅니다.”
이 처서가 곧 바로 답하였다.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는 소`가 되면 되지.”
동학사로 돌아 온 학명 스님은 돌아와 여러스님들께
"나는 도무지 무슨 소린지,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하겠읍니다."하니,
스님들이 말하기를
"지금 경허스님께서 참선에 심히 열중하여 잠자는 것도 잊고,.
밥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매우 긴박하게 하는 중이지만,
스님에게 이도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한 번 물어 보아라."하였다.
시봉을 들고있던 원규사미가 이 처사의 말을 스님께 전하였다.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는 소`가 되면 된다라는 뜻이 무엇인지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스님께서는 대지가 그냥 내려앉았으며,
만물과 자신을 함께 잊고 온갖 법문의 끝없는 오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풀렸다.
때는 고종 十八년 기묘 겨울十二월 보름이었다.(경허집)
중국 법안종의 종주 법안(法眼) 선사의 어록에
‘콧구멍 없는 소(牛無鼻孔處)’라는 표현이 실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 = 자성 = 니우(진흙소) = 철우 = 해인 = 마하무드라
= 마음자리 = 니환 = 칠통 = 상단전 = 여의주를 뜻합니다.
왜 "소"로 비유되는가?
~ 청허휴정님의 선시 "법장대사" 참조 - 전항 중에 있음
그 물건 파동하면서 "옴~ "하며 소울음소리(사자후)를 냄
소울음 소리내는 그 물건 구멍이 없겠지요.
~ 태고보우의 "고불각" 참조
번신하자 마자 본래면목을 드러내는 그 물건
이처사님께서는 이미 보셨겠지요.
전등의 위기에서
경허스님에게 전등의 사명을 다하고 가신 비승비속의 이처사님
동학사 사하촌에서 거하셨다하니 동학사에서 수계를 하셨겠군요.
이름도 없고 빛도 없으나 "전등의 사명"은 다하고 가신
~ 경허스님의 말년 "박난주"처사로 사시다 가시게 영향을 끼시신분 같으신분
후학 성진 이처사님에게
오늘도 몸과 마음을 다하여 예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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