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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話 (中) / 鏡虛惺牛(경허성우)

경성 성진 (鏡惺 聖眞) 2020. 7. 22. 17:54

 

 

法話 (中)
/ 鏡虛惺牛(경허성우)

故善知識牧牛。
有八十一行。
自佛行梵行。
乃至有殺者婬酒等行。
而道眼明白。
亦無所碍。
故潙山禪師云。
只貴正眼。
不貴行李處。
故此法門逈出三乘。
汎學者。
實不可思議。
古有習小乘戒律者。
皆誹謗禪行。
而如螗螂捍轍。
斥鷃笑鵬。
置之莫論。
且戒有大小。
有理與事。
有作與無作。
盖初発圓心。
從師聽受。
名爲作戒。
納法居懷。
休謝徃訖未來。
心住實相。
名爲無作戒。
十重波羅夷。
四十八輕垢。
名爲事戒。
即梵網經也。
貪欲即大道。
嗔恚亦復然。
如是三法中。
具一切佛法。
廣說諸法持犯無二。
名爲理戒。
即諸法無行經也。
如菩薩戒序云。
大乘以濟物利人爲懷。
不同小乘局執事相。
如末利夫人惟酒爲戒。
仙豫大王惟利與慈行利物爲戒。
曷於法界强分强域。
曇無䜟菩薩戒本云。
畧有二事失菩薩戒。
一捨菩薩願。
二增上惡心。
增上惡心者。
妄說人法二空。
未得謂也。
除是二事。
若捨此身。
戒終不失。
如此等。
是大乘戒也。
如云。
比丘爲木石所壓。
若折木鑿土。
而如今人不知小戒條分如何。
大戒開遮又如何。
設知有作與事戒。
又不知有無作與理戒。
徒尙浮秕云。
持佛戒。
亦置之莫論。
達磨大師云。
觀心一法。
㧾攝諸行。
古德云。
心地虛曠無滯局。
便是布施。
心地淸淨無鄙屑。
便是持戒。
心地恬淡無是非。
便是忍辱。
妙寂之理。
照無間断。
便是精進。
廓然無靜鬧。
便是禪定。
明徹無智愚。
便是智慧。
又古人云。
不定一法是。
不定一法非。
斥忘謀眞。
捨此取彼。
并是執縛自繩。
若悟大道之人。
不見一法是。
何有一法非。
達磨大師云。
仁義禮智信。
名爲規域。
大小乘基情。
名爲規域。
生死湼槃。
名爲規域。
不発凡夫心。
不発聲聞心。
不発菩薩心。
乃至不發佛心。
始名出規域外。
又云。
若人犯罪堕地獄。
自見己之法王。
即得解脫。
又云。
悟在須臾。
何煩皓首。
六祖大師云。
前念迷衆生。
後念悟即佛。
又古人云。
如龍換骨。
不改其鱗。
凡夫回心作佛。
不改其面。
故此法門。
最尊最貴。
百千三昧。
無量妙義。
不離當人一念心塵。

그러므로 선지식의 목우행牧牛行에 81가지가 있으니,
불행佛行·범행梵行으로부터
심지어 살생·도둑질·음행·음주 등도 있으나
도안道眼이 명백하면
아무런 구애될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산 선사潙山禪師는
“다만 안목이 바름만 귀하게 여기고
행리行履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법문은 삼승을 멀리 벗어났으니,
범범하게 배우는 사람은
실로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옛날에 소승의 계율을 익힌 이들은
모두 선사를 비방했으나
이는 버마재비가 수레바퀴를 막고
메추리가 붕새를 비웃는격이니,
제쳐 두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게다가 계에는
대승계·소승계가 있고,
이계理戒·사계事戒가 있고,
작계作戒·무작계無作戒가 있으니,

처음 원심圓心을 발하여
스승에게 듣고 받은 계를
작계라 하고,

법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과거와 미래가 끊어져
마음이 실상實相에 머무는 것을
무작계라 합니다.

그리고 십중바라이十重波羅夷와
사십팔경구四十八輕垢를
사계라 하니,
바로 『범망경』입니다.

탐욕이 곧 대도요,
진嗔·에恚도 마찬가지라,
이와 같은 삼독심 중에
일체의 불성이 갖춰져 있다 하여
제법에 계를 지킴과 범함이 둘이 아닌 것을
이계라고 널리 설하였으니,
곧 『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입니다.

예컨대 보살계의 서문에서
“대승은 중생을 구제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생각하니,
사상事相에 국집하는 소승과는 같지 않습니다.

예컨대 말리 부인末利夫人은
오직 술을 계로 삼았고,
선예대왕仙豫大王은
오직 이익과 자비로운 행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계로 삼았으니,
어찌 법계에 억지로 강역疆域을 나누리오.”라고 하였습니다.

『담무참보살계본曇無讖菩薩戒本』에서
“대략 보살계를 잃는 두 가지 경우가 있으니,

첫째는 보살의 서원을 버리는 것이요,
둘째는 증상악심增上惡心입니다.

증상악심이란
사람과 법이 둘 다 공하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경우 외에는
이 몸을 버릴지라도 계는 끝내 잃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대승계입니다.

예컨대 “비구가 나무나 돌에 눌렸을 경우,
만약 나무를 꺾거나 흙을 파고서 벗어나와
몸이 죽는 것을 면하면,
이는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소승계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소승계의 조분條分이 어떠하고
대승계의 개차開遮가 어떠한지 알지 못하며,

설령 작계와 사계가 있는 줄 알더라도
무작계와 이계가 있는 줄은 알지 못하고서

한갓 부질없는 껍데기만 숭상하면서
“불계佛戒를 지킨다.”라고 하니,
역시 제쳐 두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달마 대사는
“마음을 관觀하는 한 가지 법이
모든 수행을 총섭한다.”라고 하였고,

고덕古德은
“심지心地가 비고 툭 틔어 막힘이 없는 것이 보시이며,
심지가 청정하여 비루함이 없는 것이 지계이며,
심지가 담박하여 시비가 없는 것이 인욕이며,
오묘하고 고요한 이치를 간단없이 비추어 보는 것이 정진이며,
확연하여 고요함도 시끄러움도 없는 것이 선정이며,
사무치게 밝아 똑똑함도 어리석음도 없는 것이 지혜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또 고인이
“한 법도 옳다고 정하지 않으며
한 법도 그르다고 정하지 않나니,
거짓을 배척하고 참됨을 도모하며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하는 것은
모두 스스로 자기를 속박하는 것이다.
만약 대도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한 법의 옳음도 보지 않는데,
어찌 한 법의 그름이 있으리오.”라고 하였습니다.

달마 대사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규역規域이라 하며,
대소승의 기본 내용을 규역이라 하며,
생사와 열반을 규역이라 하나니,
범부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성문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내지 부처님의 마음조차 일으키지 않아야
비로소 규역을 벗어났다고 한다.”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여 지옥에 떨어졌더라도
자기의 법왕을 보면 곧 해탈한다.” 하였고,

또 “깨달음은 한순간에 있으니,
어찌 백발이 되도록 공부할 필요가 있으랴.” 하였습니다.

육조 대사는
“앞 생각(前念)이 미혹하면 중생이요,
뒷 생각(後念)이 깨달으면 부처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고인이
“용이 뼈를 바꿈에 그 비늘은 바꾸지 않는 것과 같으니,
범부가 마음을 돌이켜 부처가 됨에 그 얼굴은 바꾸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법문은 가장 존귀하여
백천 가지 삼매와 한량없는 묘의妙義가
그 사람의 한 생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 윗글출처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